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에(마태 12, 46-50) - 3060

Author
신부님
Date
2023-11-19 15:19
Views
907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묵상 - 3060

2023년 11월 21일 화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에(마태 12, 46-50)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 49-50)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입니다.  매일미사 책에서는 오늘은 “성모님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실 때 가득했던 그 성령의 감도로 어린 시절부터 하느님께 봉헌되신 것을 기리는 날입니다. 성모님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는 성모님께서 세 살 되던 해에 성전에서 하느님께 바쳤다고 전해 옵니다. 이날은 본디 6세기 중엽 예루살렘에 세워진 성모 성당의 봉헌을 기념하는 날이었으나, 1472년 식스토 4세 교황이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로 선포하였습니다.” 설명해 줍니다.

먼저 모든 마리아 본명을 지닌 여러분과  동시에 당신의 딸을 하느님께 봉헌했던 안나와 요아킴 본명을 지닌 여러분 모두에게도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주님 안에서 거듭나는 삶을 살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새롭게 거듭나는 삶으로의 초대입니다. 이렇게 새롭게 거듭남을 예수님께서 말씀과 성령으로 위로부터의 새로남으로 말씀하십니다.

새로움에 대해서 새 것이라는 의미로 그리스 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시간적 의미에서의 새로움은 네오스입니다. 시간이 가고 새로운 시간이 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질적인 새로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은 카이노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후서 5장 17절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새로움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가능함을 보여줍니다.

세상적인 관념의 경계를 하느님 안에서의 경계로 바꾸는 삶을 살도록 초대하십니다. 세상은 자꾸 안으로 안으로 선을 긋도록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밖으로 밖으로 이 경계를 열도록 하십니다. 주님 안에서 새롭게 거듭나지 않으면 주님의 초대에 응답할 수가 없슴을 깨닫습니다.

죽음을 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죽음을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도 세상 너머의 것을 바라보아야 하는 삶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입니다. 하지만 세상너머의 것을 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이 자꾸 고개를 돌려서 세상을 봅니다. 혈연을 뛰어넘어야 하는데 혈연을 바라 봅니다. 선을 긋지 말아야 하는데 선을 긋습니다. 구별과 분리의 습관이 죽음을 넘어서야 하는 우리를 자꾸 죽음의 한계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가족은 인간이 갖고 있는 가장 배타적인 구별의 장입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것이기에 이 가족의 벽을 넘어서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가족의 개념을 제시해 줍니다. 혈연을 넘어서 열려진 가족의 개념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시하는 형제의 개념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 50)는 말씀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형제이며 자매이고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혈연을 넘어서 하느님께로 향하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로 열려진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순종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은 서로 형제 자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옴을 알려 줍니다. 마르코 복음3장 21절에서 예수님의 친척들이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 하여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고 합니다. 이와는 달리 마태오 복음서와  루카복음서에는 이에 대한 이유 설명이 없습니다.

또한 요셉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요셉은 사망을 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들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형제들에 대해서는 일부에서는 예수님의 친형제들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그래서 성모님의 동정성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합니다. 하지만 우리 가톨릭은 여기서 말하는 예수님의 형제들은 아마도 사촌들이리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또 이스라엘에서는 사촌이라는 말이 없어서 친형제든 사촌 형제든 그냥 형제라는 말을 썼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봐서는 안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당신께서는 평화를 주러 온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왔다고 하십니다. 이러한 말씀들이 담고 있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당신께서는 어떠한 특정한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장소의 개념이 아니고 통치의 개념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어떤 장소가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장소라면 어느 곳이든 그곳에는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와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함께하고 계시는 이 땅에는 바로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와 있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바라본다면 하느님 나라에서는 결혼하는 일도 없고 형제자매의 육적인 관계는 없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존재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 만이 하느님의 나라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로 당신의  주변에서 당신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는 이 사람들이 바로 당신의 어머니이고 형제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육적인 관계의 가족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죽음을 앞두고 요한에게 당신의 어머니를 부탁하시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단지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 인간적인 사랑에 우선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이 두 사랑은 대립적인 관계의 사랑이 아닌 차원이 다른 사랑일 뿐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자리에 자신이나 세상적인 것들을 두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걱정하는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것들이 필요함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먼저 하늘나라와 하느님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것들은 곁들여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마태 6, 33).

이러한 믿음의 실천이 혈연적인 배타적인  형제의 틀에 매여 있는 우리를 하느님 안에서의 열려진 형제적인 개념에로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성모님의 자헌 기념일을 지내면서,  우리 모두가 주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말씀과 성령으로 새롭게 거듭나는 삶을  시작할 수 있기를 간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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