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느님(루카 20,27-40) - 3064

Author
신부님
Date
2023-11-24 06:57
Views
751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064

2024년 11월 25일 토요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느님(루카 20,27-40)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루카 20, 38)

얼마 전에 읽었던 복음입니다. 언제나 복음 말씀에 충실하고자 노력하면서 과거의 생각에 머물러 있지 않아야 하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하지만 시간에 쫓기다 보면 과거의 묵상의 잔재들이 새로운 묵상의 씨앗들을 덮어 버립니다.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이들의 하느님이신데 저의 묵상 글은 잠시의 나태함으로 인해서 죽은 묵상글의 자료들을 쫓아 갑니다. 비록 과거의 죽은 묵상 글이지만 그래도 현재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자료들은 살아있는 묵상글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합리화 하면서 다시 한번 과거의 묵상글을 묵상해 봅니다. 이러한 묵상을 통해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살펴보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인간은 질문하는 존재입니다. 좋은 질문은 좋은 답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 속에서도 하느님에 대한 끝없는 질문을 합니다. 우리 모두는 성경의 모든 말씀을 다 이해하고 믿는 것은 아닙니다. 신부인 저도 참으로 성경을 읽으면서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모르는 것은 모르는대로 일단은 믿고서 읽습니다. 한 순간에 모든것을 해결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말씀을 읽으면서 어느 순간  이해가 안되던 말씀이 이해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때는 너무나 기쁩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재미인가 보다하고 느낍니다. 말씀 안에서 말씀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을 성숙하게 합니다.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불순한 의도를 갖고서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의 답변을 통해서 예수님을 궁지에 빠뜨리려는 꼬투리는 찾는 이들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모습이 이천년이 지난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슴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이들은 모세오경 만을 신봉하고 있었기에 부활이나 천사나 영적인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율법에 근거하여 일곱형제가 있는데 맏이가 자식이 없이 죽으면 다른 형제가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서 대를 이어야 하는데 그런데 일곱 모두가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으면 그러면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실제로 이 법의 배경은 재산 상속에 관한 율법이고 그리고 한 집에 사는 형제에만 적용되는 법이었습니다.

이들은 만일에 부활이 있다면 이 부활은 현세의 연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두가이들이 형제가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으면 다른 형제가 죽은 이의 아내와 결혼해서 형제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이 율법은 부활이 있다면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대를 이으면 될 것이기 때문에 부활이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의 다름을 갖고서 설명하십니다. 왜곡된 의도의 질문에 순수한 답변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사후의 부활문제에 대한 답변이기도 합니다. 부활 후의 세계는 이승의 연장이 아니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혼한다는 것은 이 세상의 필요에 의해서 생겨난 제도입니다. 그런데 저승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때문에 종족 보존을 위한 자녀생산의 필요가 없게 됩니다. 이 말은 결혼의 중요한 목적중의 하나가 소멸 됨을 말합니다.  즉 결혼의 관계가 부활 후에는 새로운 인격적인 관계로 승화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부활한 사람은 천사들과 같아져서 다시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느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인들이 죽은 뒤에도 하느님을 섬기고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되살려 주셨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눈에는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 앞에서 영원히 살아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다.’ 는 말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으로 부터 생명을 받아서 살고, 죽은 다음에는 새로운 생명을 받아서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설명에 율법학자 몇 사람이 ‘스승님, 잘 말씀하셨습니다.’(루카 20, 39)하고 호응을 합니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박해하던 바리사이들도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두가이들의 그릇된 생각을 바로 잡아주시는 예수님께 호의적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세상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참 성공의 삶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가르쳐주십니다. 또한 당신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은혜와 축복도 허락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본질이 세상적인 야망이나 목적을 달성하고 명성을 누리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하늘나라와 하느님의 뜻을 구해야 하는 것을 강조해 주십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느님과 세상적인 것의 순서가 바뀌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주객이 전도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믿음의 본질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하늘나라와 하느님의 뜻을 먼저 구하면 다른 것들은 곁들여서 받게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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