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육을 따르는 삶과 성령을 따르는 삶(요한 11, 45-56) - 2859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859
2023년 4월 1일 토요일
육을 따르는 삶과 성령을 따르는 삶(요한 11, 45-56)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52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요한 11, 51 -52)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나하고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본인 역시도 종종 이러한 경우가 있슴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너무나 당연합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들음도 보는 것도 자기 위주로 듣고 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살리시는 것을 본 유다인들의 반응은 다양합니다. 유다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에게는 바로 십자가는 하느님의 힘이었습니다. 반면에 이들 중 어떤 사람들은 격렬하게 반대를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바리사이들에게 가서 이 사실을 보고 합니다. 이들에게 십자가는 걸림돌이었습니다. 물론 이들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수석사제들이나 바리사이들에게 알린 이유는 예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를 보고도 알리지 않으면 자신들에게 돌아올 후 폭풍이 두려워서였을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의회를 소집하고 예수님에게로 쏠리는 당시의 민심을 돌려놓기 위해서 대책을 논의합니다.
결론은 예수님을 없애야 하는데 마땅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가 말합니다.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서 한 사람을 없애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그의 의견에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카야파가 내세운 대의 명분이 우연히도 예언이었슴을 알게 됩니다. 그 예언이란 바로 “민족을 위해서 죽고 흩어진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기 위해서 돌아가신다.”(요한 11, 52)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도 친구가 되고 친구도 원수가 되는 사회의 현상은 지금이나 이천년 전이나 동일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 8장 5절부터 7절에서
“무릇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성령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육의 관심사는 하느님을 적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것은 하느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 (로마 8, 5-7)하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이 참으로 당시의 바리사이들이나 수석사제들에게 적당한 말이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현재 내가 어떠한 것을 따르고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육을 따르는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성령을 따르는 사람들입니까? 육의 관심사인 죽음과 성령의 관심사인 생명과 평화는 순간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이 둘은 함께 옵니다. 그런데 죽음을 선택하는 데는 생각이 필요 없습니다.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하면 됩니다. 하지만 성령을 따르기 위해서는 생각과 의지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령을 따르는 삶의 선택이 어려운 것입니다.
사순시기는 성령을 따르는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시기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거기에서 생명의 샘이 흘러나온다.”(잠언 4, 23)는 이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며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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