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축복의 통로가 되는 삶 (마태 7, 1-5) - 2567

Author
신부님
Date
2022-06-19 09:07
Views
584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567

2022년 6월 20일 화요일

축복의 통로가 되는 삶 (마태 7, 1-5)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마태 7, 5)

주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하루 피정을 잘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비대면에서 대면으로 돌아온 지금, 대면한다는 것이 얼마나 좋고 감사한 일인가를 피정을 통해서 기뻐하며 돌아 가시는 여러분들을 보면서 깨닫게 됩니다. 

팬데믹 기간동안  팬데믹으로 인하여 참으로 많은 분들이 주님의 품 안에 안겼으며 이로인해서 고통을 받았던 수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인간의 교만으로 일어났다는 사실에   우리 또한 이러한 일들에 대한 일말의 책임이 있슴을 느낍니다.

그렇게도 오늘을 살기를 원했던 분들이 주님의 품 안에 안기셨습니다. 남아 있는 우리의 몫은 그들이 포기해야만 했던 그들의 바람과 희망이라는 사실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면서 이를 위해서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창세기를 읽으면서 나도 아브라함과 같이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통해서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보았습니다.  ‘축복의 통로가 되는 삶’ 을 살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감사와 순명입니다.  내가 전혀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가라는 주님의 뜻에 오로지 주님 만을 믿으며 떠나는 삶입니다.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의 삶에서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감사와 순명은 바로 하느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 되는 삶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감사와 순명의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삶의 구체적인 실천 방법으로  이웃의 부족함을 발견한고 단죄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를 보는 삶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때마다 남을 보기보다 나를 보는 습관을 길러야겠다고 다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실제로 그러한 상황에 접하게 될 때마다 아직도 남을 보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러하 버릇을 갖고 있는데 하물며 다른사람에게  자신을 먼저 보라고 기대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할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먼저 자신은 이해받기를 원하면서도 남을 이해하는데는 인색한 우리들입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람에게 하느님께서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당신께서 보여 주실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익숙함 것에서의 결별을 요구하십니다. 낯선 곳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큰 보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보상의 약속을 믿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람은 하느님께서 그에게 하신, 즉 ‘큰 민족이 되고 그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하느님께서 그에게 저주를 내리시고 복을 주시며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창세 12,2-3) 라는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소유함을 원하지만 하느님께서 아브람에게 하시는 약속은 복을 나누어 주는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민족들이 그를 통해서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머뭄’을 선호하지 ‘떠남’을 택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두고 떠남’을 원하십니다.  ‘떠남’은 새롭게 거듭남을 말합니다. 옛모습을 버리고 새롭게 하늘로부터 태어남을 말합니다. 세상을 바라봄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심판받지 않기 위해서 남을 심판하지마라”고 말씀하십니다. 남을 심판하는 권한은 하느님께 귀속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것은 하느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5장 43절에서  예수님께서 “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기억합니다.

이 말씀은 남을 심판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죄를 묵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면 나도 심판받을 일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6장 12절 에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라고 기도하는 것은 바로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 역시 용서받을 수 없슴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먼저 용서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심판받지 않기 위해서 남을 심판하지 말아야 함과 동시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심판하는 그대로 우리도 심판받는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쉬운일이지만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제가 되는 것이 어려운 것 같지만 더 어려운 일은 사제답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집트를 탈출했던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의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숱한 유혹에 쓰러진 것을 보면서 우리가 깨닫는 것입니다. 1세대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칼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하고 아무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했슴은 선택된 민족으로서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이었슴을 우리는 잘 압니다.

사무엘 하 16장을 보면,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쿠데타로 도망을 다닐 때  사울 집안의 친척 가운데 한 사람인 시므이가 다윗에게 “꺼져라, 꺼져! 이 살인자야, 이 무뢰한아!”(사무엘 하 16, 7) 하면서 저주를 퍼붓습니다. 이를 두고서 츠루야의 아들 아비사이가  다윗에게 그를 죽이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를 말립니다. 

이 때 다윗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내 배 속에서 나온 자식도 내 목숨을 노리는데, 하물며 이 벤야민 사람이야 오죽하겠소? 주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저주하게 내버려 두시오. 행여 주님께서 나의 불행을 보시고, 오늘 내리시는 저주를 선으로 갚아 주실지 누가 알겠소?” (사무 하 16, 11-12)

시므이의 저주를 통해서 자신을 들여다 보는 다윗의 모습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다시금 고백하고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다윗의 모습입니다. 

내가 상황이 좋을 때는 나의 사람이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실패한 나를 두고서 저주를 퍼붓는 똑 같은 인간의 두 모습입니다. 나에게 호의 를 베풀고 다가오는 사람들의 내면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이 사람이 배신할 때 그들 단죄하기 보다는 나의 부족함을 볼 줄 알고 하느님께로 나아갈 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그러한 체험을 통해서 주님 안에서 더욱 성숙해 지는 것입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심판은 하느님께 맡기고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삶을 살고자 다짐합니다. 그래서  나를 통해서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복을 받는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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