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언제나 새롭게 거듭나는 삶(마태 14,1-12) - 2602

Author
신부님
Date
2022-07-28 21:03
Views
985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602

2022년 7월 30일 토요일

언제나 새롭게 거듭나는 삶(마태 14,1-12)

있던 것은 다시 있을 것이고, 이루어진 것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니,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코헬렛 1, 9)

“3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4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마태 14, 3-4))

이 세상에 죄가 들어 온것은 하느님과 같아지겠다는 인간의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이 교만은 우리에게 원죄와 죽음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원죄는 우리 인간의 본성을 죄로 향하게 했으며 인간을 죽음의 두려움 속에 살게 했습니다. 

이러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은 우리가 갖고 있는 두려움의 근본적인 이유인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바로 구원입니다.

이 구원의 전제는 믿음입니다. 인간 자신의 능력으로는 이길 수가 없는 악의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우리 인간의 자유의지의 결단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많이 짖는 개가 겁이 많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짖는 개를 보면 무서워했었는데… 빈 깡통이 시끄럽다는 말이 개를 두고 한 말이기도 하네요. 겉으로 강하게 보이는 인간일수록 내면으로는 더욱 약할 수가 있습니다.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기 위한 행동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헤로데 안티파스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서 예수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세례자 요한으로 받아들입니다. 요한을 죽이는 사건에 대해서 공관복음서들은 내용의 차이는 있지만 함께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헤로데가 그의 동생 필립보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 한 것에 대해서서 반대를 했기 때문에 세례자 요한을 죽일려고 했지만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서 죽이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에수님께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며 행하신 기적등에 대한 소문을 들었던 헤로데는 몹시 당황하였다고 복음서는 전합니다.

루까 복음에 따르면 당시의 소문에는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과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는 것과 그리고 ‘옛 예언자 중의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헤로데가 참으로 당황한 이유는 여러 소문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이 죽은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났다는 소문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세례자 요한을 감옥에  가두고 죽였는데 살아났다고 하니 당황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도둑이 제발 저린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헤로데는 이 소문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자신이 틀림없이 요한을 죽였는데 소문이 그러하니 이 소문의 인물을 만나보고 싶어합니다. 동시에 소문의 인물이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을 것입니다. 믿음이나 신앙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냥 자신이 갖고 있던 불안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으로 우연한 인연을 많이 체험합니다. 기쁜 인연이 있고 불안한 인연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연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서 기쁨과 불안이 좌우되나 봅니다.

요즈음은 주변에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저하고 직접적인 인연을 가졌던 분들도 있고 간접적인 인연을 가졌던 분들도 계십니다.  만남과 이별이라는 것이 참으로 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한 순간의 만남 속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헤로데와 세례자 요한의 만남처럼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서 만남의 대상인 사람을 희생시켜야 하는 만남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만남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양극단적인 만남은 서로의 태도에 따라서 바뀔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헤로데가 확인하기를 원했던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자기가 만나고 싶어했던 당시의 예수님은 한참 전성기의 예수님이셨다면 정작 자신이 만났을 때의 예수님은 가장 비참한 순간의 예수님입니다. 자신 앞에 죄인으로 선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보이는 모습에 따라서 대하는 사람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항구함이 필요합니다. 시간과 장소와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는 만남의 태도가 아닌 한 인격을 인격체로서 차별없이 만나는 마음가짐과 믿음이 중요합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코헬렛 1, 9)는 코헬렛의 말씀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나의 원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질문을 해 봅니다. 나의 새로운 모습은 세파에 덧쒸워진 모습입니다. 원래의 나의 모습이 있는 한 지금의 나는 새로운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새로운 모습은 이제 세파의 껍질을 하나씩 하나씩 벗겨가면서 나타나는 양파의 속살 같은 모습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셨던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삶이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헬렛의 저자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맗하나 봅니다.

헤로데가 불안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불안에서 해방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하늘 아래에 새로운 것이 없다고 코헬렛의 저자는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로지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머물러 있을 때 새로워질 수가 있습니다. 세상적인 불안이 사라질 것입니다.

하늘 아래에는 새로운 것이 없지만 하느님 안에서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고자 다짐합니다. 세상에는 새로운 것이 없지만 세상을 넘어 하느님의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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