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삶은?(마태 5, 1-12) - 3231

Author
신부님
Date
2024-06-08 09:48
Views
644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231

2023년 6월 12일 월요일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삶은?(마태 5, 1-12)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 5:3)

지난 주말에 예수 성심 대축일과 티없이 멁으신 성모신심 기념일을 지냈습니다.  이 두 축일을 지내면서 예수님의 마음과 성모님의 마음에 대해서 좀 더 깊이 묵상할 기회를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특히 사제로서 살아가면서 두분의 마음을 닮는 사제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사제인 저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하느님 뜻에 합당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알려주십니다.

예수님의 공생활이 시작되자,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첫 번째 전도여행에서 “온 갈릴레아를 두루 다니시며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백성 가운데서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그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은 갖가지 병에 걸려 신음하는 환자들과 마귀들린 사람들과 간질병자들과 중풍병자들을 예수께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외적으로 치유해 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인간이 갖고 있는 사고를 근본적으로 바꾸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세상적인 사고에 젖어 있는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없는 삶의 양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넘어서 하늘나라에서의 삶의 단초를 주는 것입니다.

참 행복선언을 하시는 예수님의 어조는 권위가 있고 페부를 찌르는 가르침입니다. 율법학자들처럼 배운 것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파견받은 아버지의 말씀 자체로서의 권위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눈을 가지고서는 결코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고, 이 세상의 귀로서는 결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완전히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 우주관을 바꾸지 않고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전도의 시작은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마태 4,17)는 것이었습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세상적인 가치관을 영적인 하느님의 가치관으로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회개의 구체적인 삶의 양식이 바로 참 행복선언에 있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 가르침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이 선언은 나머지 7가지의 행복선언의 의미를 다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참으로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말입니다. 가난의 의미를 잘 이해하면 이 말씀의 참의미를 깨닫을 수가 있습니다.

헬라어에 '가난'이라는 말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Penes'(페네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노동을 해야 먹을 수 있는 가난을 말합니다.  즉 하루 벌어서 하루를 먹고 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극도의 극빈자는 아닙니다.

반면에 ‘Ptochos'(프토코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절대적인 극빈 을 말합니다. 사흘에 한 끼 먹기도 어려운 자들입니다. 거지 라자로 (루가 16,19~31참조)처럼 누가 돌봐 줄 이도 없고 그렇다고 제 손으로 벌어먹지도 못하는 극심한 가난을 말합니다. 이런 가난이 바로 프토코스인데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가난은 바로 이 프토코스를 말합니다. 남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의미에서 ‘마음이 가난하다.’는 말은 하느님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즉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두고서 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온유한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평화를 위하여 자신을 죽이고 사는 사람들 모두는 바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임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지혜는 자신의 죽어야 함을 아는 것입니다. 자신이 죽어야 하는 존재이기에 살아있는 동안 기쁘게 의미있게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일이 당연히 오는 날이 아니라 오늘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하루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 하루를 참으로 귀하고 의미있게 살아갈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바로 진복팔 단의 삶을 살아갈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바로 하루하루의 삶이 주님의 은총이 충만한  매우 복된 삶이 될 것입니다. 바로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외적으로 치유해 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인간이 갖고 있는 사고를 근본적으로 바꾸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세상적인 사고에 젖어 있는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없는 삶의 양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넘어서 하늘나라에서의 삶의 단초를 주는 것입니다.

참 행복선언을 하시는 예수님의 어조는 권위가 있고 페부를 찌르는 가르침입니다. 율법학자들처럼 배운 것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파견받은 아버지의 말씀 자체로서의 권위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눈을 가지고서는 결코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고, 이 세상의 귀로서는 결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완전히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 우주관을 바꾸지 않고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전도의 시작은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마태 4,17)는 것이었습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세상적인 가치관을 영적인 하느님의 가치관으로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회개의 구체적인 삶의 양식이 바로 참 행복선언에 있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 가르침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이 선언은 나머지 7가지의 행복선언의 의미를 다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참으로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말입니다. 가난의 의미를 잘 이해하면 이 말씀의 참의미를 깨닫을 수가 있습니다.

헬라어에 '가난'이라는 말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Penes'(페네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노동을 해야 먹을 수 있는 가난을 말합니다.  즉 하루 벌어서 하루를 먹고 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극도의 극빈자는 아닙니다.

반면에 ‘Ptochos'(프토코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절대적인 극빈 을 말합니다. 사흘에 한 끼 먹기도 어려운 자들입니다. 거지 라자로 (루가 16,19~31참조)처럼 누가 돌봐 줄 이도 없고 그렇다고 제 손으로 벌어먹지도 못하는 극심한 가난을 말합니다. 이런 가난이 바로 프토코스인데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가난은 바로 이 프토코스를 말합니다. 남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의미에서 ‘마음이 가난하다.’는 말은 하느님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즉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두고서 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온유한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평화를 위하여 자신을 죽이고 사는 사람들 모두는 바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임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지혜는 자신의 죽어야 함을 아는 것입니다. 자신이 죽어야 하는 존재이기에 살아있는 동안 기쁘게 의미있게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일이 당연히 오는 날이 아니라 오늘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하루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 하루를 참으로 귀하고 의미있게 살아갈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바로 진복팔 단의 삶을 살아갈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바로 하루하루의 삶이 주님의 은총이 충만한  매우 복된 삶이 될 것입니다. 바로 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하느님께 간절히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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