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안식일의 주인은 누구인가(루카 6, 6-11) - 3308

Author
신부님
Date
2024-09-07 21:57
Views
574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308

2024년 9월 9일 월요일

안식일의 주인은 누구인가(루카 6, 6-11)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루카 6, 7)

법은 약자의 편인지 힘있는 사람의 편인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법은 언제나 정의와 사랑의 기준에 따라서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편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얒자의 편이라고 해서 법의 적용이 기준에 위반되어서도 않될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법은 돈있고 힘있는 사람의 편이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비싼 변호사를 쓰면 이긴다는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백하는 사람’과 ‘고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고발하는데 익숙합니다.

오늘 복음은 고발하는 사람의 전형을 보여 줍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던 사람들입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서 치밀하게 준비를 하였을 것입니다. 정교한 언어와 설득력이 있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미움과 증오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고백하는 사람은 사랑에서 출발합니다. 논리 정연하고 교묘한 언어 대신에  어눌하고 투박한 언어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이웃을 배려하는 사랑과 자신을 고백하는 겸손함이 배여 있습니다. 오로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오늘 복음은 한 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과 예수님과의 만남을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오른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자신이 예수님께 자비를 청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일 수도 있지만  오늘 복음의 7절을 보면,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데려왔을 가능성이 더 많아 보입니다.

이미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의 규정을 어기고 밀이삭을 뜯는 것을 보고서 예수님께 왜 당신의 제자들은 안식일의 규졍을 지키지 않습니까? 하고 따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비판에 대해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 2, 27)  하고 말씀하시면서 이어서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루카 6, 5)하고 말씀하십니다.

지금의 세상은, 기득권을 가진 자는 항상 법앞에서도 강자이며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가난하고 약한 사람은 언제나 법 앞에서도 약자입니다. 이를 되돌려 놓으려는 예수님의 행동이 당시의 기득권자들에게는 눈의 가시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해서 구실을 찾던 사람들이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회당으로 데려와서 예수님께서 안식일 규정을 어기면 고발하기 위해서 매의 눈으로 지켜 보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너희는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그것은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다.  이날을 더럽히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 이날에 일을 하는 자는 누구나 제 백성 가운데에서 잘려나갈 것이다.”(탈출 31, 14)는 율법 규정에 의하면 안식일 법을 지키지 않으면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예수님을 지켜보는 이유는 이 규정을 어기면 죽이겠다는 의도가 있슴을 알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사람들이 잘보이는 가운데로 나와서 서라고 하시면서 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6, 9)  하고 질문을 하십니다. 그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반박할 수가 없어서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의 손을 고쳐주시는 기적으로 당신의 질문에 답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갖고 있었던 안식일에 할 수 있는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에 대한 적용기준을 바꾸시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노동에 해당되는가, 아닌가? 가 안식일을 지키는 기준이 아니라, 그 일이 착한 일인가, 아닌가? 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 아버지!  기쁨보다는 아픔과 슬픔이 많은 세상입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이 세상을 좀 더 깊이 들여다 보면 조용히 당신의 뜻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임을 확신합니다.  언제나 세상의 논리에 쓰러지지만 그렇지만 당신의 뜻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며 살아갑니다. 새로운 하루를 허락하신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의 뜻을 마음 속이 간직만 하는 삶이 아닌 일상에서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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