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죽음의 길을 넘어 생명의 길로(요한 13,21ㄴ-33.36-38) - 3504

Author
신부님
Date
2025-04-14 02:40
Views
956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504

2025년 4월 15일 화요일

죽음의 길을 넘어 생명의 길로(요한 13,21ㄴ-33.36-38)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요한 13, 36)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떻게 살고 어디로 가는가?’하는 질문은 우리 인간이 가장 알고 싶어하는 질문입니다. 많은 철학자들이 이 세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하고자 노력 하였지만 여전히 답을 하지 못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질문에 대해서 명확하게 답을 합니다.  그 답은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왔다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을 살고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상에서의 돌아가심이  목전에 와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유다의 배반을 예고하시며, 이제 당신께서 "떠날 시간"이 다가왔음을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들은 시몬 베드로는 인간적인 불안과 애틋함으로 묻습니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주님의 대답은 간결하지만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베드로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 말씀에 “주님, 어찌하여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이 그에게 다가오는  시련 앞에서 흔들릴 수 있음을 아셨습니다.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는 말씀은, 그의 미성숙함, 인간적 한계, 그리고 진정한 제자의 길이 단순한 의지로만 갈 수 없는 길임을 드러냅니다.

이 모습은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고난의 길, 용서의 길, 희생의 길 앞에서는 머뭇거립니다. 세상의 소리와 안락함 앞에 진리를 침묵시키고,
사랑하되 조건을 붙이며, 자기 십자가를 지되 가볍기만을 바라는 마음이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단호히 거절하지 않으십니다.오히려 희망의 말씀, 회복의 약속을 주십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먼저 걸으신 이유는, 우리 모두가 그 뒤를 따라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죄의 사슬에 묶여 있던 인간이 이제는 은총의 힘으로, 십자가를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존재가 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실제로 베드로는 자신의 실패와 눈물 속에서 다시 일어났고, 오순절 이후에는 그 누구보다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하며, 마침내 로마에서 거꾸로 매달린 십자가 위에서 순교하게 됩니다. 그는 결국 주님의 말씀대로, 스승의 길을 온전히 따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 역시 어떤 순간에는 주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주님께서 가시는 길이 멀게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고 느껴질 때, 정의를 외쳐도 세상이 변화하지 않을 때, 고통 앞에서 하느님의 뜻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집니다:

“주님, 왜 저는 지금 당신을 따를 수 없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지금은 믿음이 부족하고, 용기가 약하지만, 은총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며, 주님께서는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주님께서 먼저 가신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로 나아가는 생명의 길입니다. 우리도 그 길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부족하더라도, 고난과 실패, 배신과 눈물 속에서도 주님의 은총이 우리를 이끌어 줄 것입니다.

이번 성주간, 십자가의 그림자를 외면하지 말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나중”을 향해 오늘 하루, 한 걸음씩 함께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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