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하느님의 다가오심과 이끄심(요한 6, 44-51) - 3523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523
2025년 5월 8일 목요일
하느님의 다가오심과 이끄심(요한 6, 44-51)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 44)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잘 한다고 합니다. 사랑을 받아보지 못하면 사랑의 표현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맛있는 요리를 먹어본 사람이 맛있는 요리를 잘 알고 요리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미사의 독서와 복음인, 사도행전 8장과 요한복음 6장은 서로 전혀 다른 장면을 다루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놀라운 공통의 주제가 흐르고 있슴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먼저 다가오시고 이끄신다’는 진리입니다.
오늘 제1독서(사도행 8, 26-40)를 보면, 필리포스가 길을 가다가 에티오피아 사람 하나를 만나는데 그는 에티오피아의 여왕 칸다케의 내시로서 여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고관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경배하러 왔고, 돌아가는 수레 안에서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었습니다.
필리포스가 그에게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알아듣습니까?” 하고 묻자 그는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사도 8,31) 하고 대답을 합니다. 그의 이 말은 인간의 부족함을, 그리고 동시에 겸손한 열린 마음을 잘 보여줍니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 겸손한 마음을 보시고, 필리포스를 그에게 보내십니다. 그 만남은 단순한 설명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세례를 청합니다. 말씀을 듣고 이해하고, 결국 물과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완전한 회심의 여정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요한 6,44-51)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 44)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구절을 통하여 ‘하느님께서의 이끄심’이라는 표현과 ‘나에게 오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바로 우리가 신앙을 가짐에 있어서의 핵심요소 임을 깨닫습니다. 축복을 축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감사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나에게 오는”이라는 표현에는 자신의 의지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의 이끄심 이라는 말은 하느님의 초대이고 하느님의 의지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초대에 대한 응답은 우리의 의지인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은 예수님이십니다. 내려온 생명의 빵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빵을 먹는 것은 우리의 믿음의 표현인 것입니다.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명의 빵을 먹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자신을 ‘생명의 빵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유다인들이 먹었던 ‘만나’와 당신 자신과의 차이를 설명하십니다. ‘만나’와 ‘생명의 빵’이 하느님에게서 내려온 것은 같지만 ‘만나’를 먹었던 사람들이 모두 하느님의 벌을 받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하지만 ‘생명의 빵’의 결과는 ‘영원한 생명’이라고 강조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바로 당신 자신을 세상을 위해서 바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은 ‘몸’의 좀 더 강한 표현인데, 당신 자신의 죽음으로 주어지는 성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제정하신 ‘성체성사를 통해서 당신의 생명을 지속적으로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금 성체성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성체를 영함으로서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유다인들이 예수님의 이 말씀을 알아듣는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을 것입니다.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이 사랑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이 이들을 예수님께로 다가가지 못하게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의 이끄심에 응답하지 못한 닫혀진 마음입니다.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오늘 독서에 나오는 내시는 하느님의 이끄심에 적극적으로 응답한 사람이었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말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는 신앙이 이스라엘 밖으로 전파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면 누구도 하느님께로 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초대에 응답이 중요함을 다시 한번 이 사람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사랑이신 하느님 아버지!
당신께서 우리를 먼저 이끌어 주심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말씀이 우리 안에 살아 움직이게 하시고,
우리가 또 다른 이들에게 당신을 전하는 살아 있는 필리포스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Number | Title | Author | Date | Votes | Views |
2960 |
New 희망의 시작 -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의 의미(요한 14, 7-14) - 3531
신부님
|
2025.05.11
|
Votes 0
|
Views 103
|
신부님 | 2025.05.11 | 0 | 103 |
2959 |
New 희망의 시작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요한 14,1-6) - 3530
신부님
|
2025.05.11
|
Votes 0
|
Views 152
|
신부님 | 2025.05.11 | 0 | 152 |
2958 |
New 희망의 시작 - 자신의 정체성에 합당한 삶(요한 13,16-20) - 3529
신부님
|
2025.05.11
|
Votes 2
|
Views 281
|
신부님 | 2025.05.11 | 2 | 281 |
2957 |
New 희망의 시작 - 마티아 사도 축일(요한 15, 9-17) - 3528
신부님
|
2025.05.11
|
Votes 4
|
Views 565
|
신부님 | 2025.05.11 | 4 | 565 |
2956 |
New 희망의 시작 - 굳건한 믿음으로 성장하는 공동체 (요한 10,22-30) - 3527
신부님
|
2025.05.10
|
Votes 1
|
Views 503
|
신부님 | 2025.05.10 | 1 | 503 |
2955 |
New 희망의 시작 - 목자와 양의 이상적인 관계(요한 10, 1-10) - 3526
신부님
|
2025.05.10
|
Votes 2
|
Views 653
|
신부님 | 2025.05.10 | 2 | 653 |
2954 |
희망의 시작 - 추세를 거스르는 삶(요한 6,60ㄴ-69 - 3525
신부님
|
2025.05.08
|
Votes 2
|
Views 547
|
신부님 | 2025.05.08 | 2 | 547 |
2953 |
희망의 시작 - 변화가 생명이며 생명이 곧 희망이다(요한 6, 52-59) - 3524
신부님
|
2025.05.07
|
Votes 2
|
Views 676
|
신부님 | 2025.05.07 | 2 | 676 |
2952 |
희망의 시작 - 하느님의 다가오심과 이끄심(요한 6, 44-51) - 3523
신부님
|
2025.05.06
|
Votes 2
|
Views 528
|
신부님 | 2025.05.06 | 2 | 528 |
2951 |
희망의 시작 -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신비(요한 6, 35-40) - 3522
신부님
|
2025.05.05
|
Votes 3
|
Views 724
|
신부님 | 2025.05.05 | 3 | 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