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요한 19,25-27) - 2692

Author
신부님
Date
2022-09-13 22:25
Views
1197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692

2022년 9월 15일 목요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요한 19,25-27)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요한 19, 25)

오늘은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입니다.  성모님께서 당신의 아들이 자가의 길을 가는 함께가시면서 가지셨던 그 아픔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어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신 것을 기억하면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이 십자가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유다인들이 에수 그리스도께 갖고 있었었던 생각과  그리스인들 갖고 있었던 생각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 어떻게 다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세장적인 지혜로 십자가를 바라보면, 십자가는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지만 그리스도인의 눈에는 이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죄가 용서되고 영원한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가교임을 깨닫습니다.

오늘은 아들의 고통 앞에서 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시메온이 성모님께 예언했던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하는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이미 아들이 이러한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시메온을 통해서 알려주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 예언을 한 순간도 잊지 않고 마음에 담고 일생을 사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상이 평범하지 않았던 것처럼 당연히 어머니의 삶도 평탄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언제나 성령을 통해서 이 아이를 가졌을 때의 마음으로 이 아이를 키웠을 것입니다.

십자가는   이천 년 전 당시 로마 제국에서 가장 흉악한 죽음의 형틀이었고 합니다. 이 십자가 위에서 죄수가 손과 발이 못에 박힌 채로 서서히 죽어가는 죽음의 형틀인 것입니다. 너무나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형벌이었기에 당시  로마 시민권자들에게는 이 십자가형을 실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단지 반역자나 정치범이나 노예에게만 이 십자가형을 실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죄수는 십자가에 못 박기 전에 채찍질을 당합니다. 그리고 그의 옷을 모두 벗깁니다. 이런 관습은 십자가에 못 박힐 죄수에게 ‘너는 이러한 수치를 당해야 하는 존재, 너는 모욕을 당해도 괜찮은 존재’ 라는 사실을 본인 스스로 알게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는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죄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는 것입니다.

보통 죄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서 세워지게 되면 자신의 몸무게에 눌려 횡격막이 조여 들면서 질식사하는 경우도 있고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죽게 되는 경우도 있었으며 너무 아파 고통스러워서 기절해서 죽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죽은 시체를 금방 끌어내리지 않고 한동안 십자가 위에 그냥 놓아둡니다. 그러면 새들이 와서 쪼아 먹게 되는 그런 죽음이 십자가에 달리는 죽음이었습니다.

이런 참혹한 고통을 당하는 아들을 바라보시는 어머니의 심정을 우리가 어떻게 헤아릴 수가 있겠습니까? 오로지 주님께 의탁하지 않고서는 이겨나갈 수 없는 고통임을 압니다. 주님의 뜻에 순명하시는 어머님의 모습입니다.

오늘 매일 미사 책을 보면, 성모님의 이러한 고통을 묵상하고 기억하는 신심은 오래전부터 널리 퍼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 날을 공적으로 기념하기 시작한 것은  1688년 인노첸시오 11세 교황 때였다고 합니다. 1908년 비오 10세 교황은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다음 날인 9월 15일로 성모님의 고통 념일을 옮겨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과 연계하여 기억하도록  하였다고 전해 줍니다.

십자가에 달려 있는 당신의 아들을 바라보시는 성모님의 아픔과 고통을 마음에 담고 하루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일상에서 대면하게 되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통해서 예수님과 성모님의 고통을 더욱 잘 이해하고 참된 겸손을 배울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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