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이웃에게 희망을 주는 삶 (마태 13,31-35) - 2291

Author
Stella
Date
2021-07-27 22:43
Views
413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291

2021년 7월 27일 화요일

이웃에게 희망을 주는 삶(마태13,31-35)

“나는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리라.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것을 드러내리라.”(마태 13, 35)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이 말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겉만 보고 사람이나 어떤 것을 평가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먼저 어제의 말씀과 오늘의 말씀이 바뀌었슴을 알려 드립니다. 저의 착각으로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어제의 말씀의 묵이고 어제의 말씀 묵상은 오늘의 묵상임을 알려 드립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가 초래한 상상을 초월하는 어려운 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거의 끝이 보인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다시 확산이 되고 있습니다. 백신이 개발되면 해결이 될 것같이 생각을 했었는데 의외로 백신에 대한 불신의 벽이 두터워서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을 통해서 확산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이러한 설이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백신을 맞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이유를 갖고 살아 갑니다. 이들을 탓하고 싶지만 우리가 쌓아온 불신의 벽이기에 아쉬워할 땨름입니다. 함께 하면 좋을 일을 더욱 힘든 것은 이 고통의 끝이 언제일까를 가늠하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시기를 지내고 있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이겨나가고자 노력하는 이유는 믿음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우리를 절망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하늘나라는 너무나 작아서 우리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 하더라도,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복음 말씀처럼 지금 겨자씨의 모습으로, 누룩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은 하느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날이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그런 까닭에 많은 이민족의 지배를 받았지만 참고 견디어 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의 압제 아래 있었지만, 언젠가 주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실 것이고 그 권한을 자신들에게 주실 것이라 믿고 있었습니다.

이천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외부의 압제 하에서 고통을 받고 있지는 않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인간의 교만과 무절제한 삶의 양식이 만들어낸 자연질서의 파괴, 무질서한 낭비와 탐욕이 만들어낸 자연재해와 경제적인 불균형과 병에 의한 고통입니다. 이러한 고통은 타인의 지배하에 있을 때보다 어쩌면 더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비록 이러한 절망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삶을 살아가도록 초대하십니다.

누룩과 겨자 씨의 비유로 예수님께서 들려 주시는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 때문입니다. 이 비유는 신앙의 눈으로만 이해 할 수 있는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입니다. 이 나라는 누룩과 겨자씨 처럼 너무나 작은 모습이지만 이것이 자라나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모든 절망의 요소들을 제거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를 ‘겨자씨’와 ‘누룩’에 비유하십니다.
먼저, 겨자씨의 비유에서는 하늘 나라의 ‘풍성함’이 드러납니다. 이 비유에서, 가장 작은 씨앗 중의 하나인 겨자씨가 자라서 하늘의 새들도 와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는 것처럼 지금 힘들고 어렵게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로운 안식처’를 제공해 주는 ‘겸손하고 편안한 사람’이 되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동시에 누룩의 비유를 통해서, 별것 아닌 ‘작은 양의 밀가루’가, ‘누룩’이라는 존재에 의해서 ‘하나의 빵’으로 부풀듯이, 하늘 나라를 추구하는 우리 자신을 통해서 하늘 나라의 신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 간의 신뢰를 회복한다는 것이 참으로 힘듬을 압니다. 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나갈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하느님 안에서의 믿음의 회복입니다. 참으로 사랑하기에 이웃을 위해서 나를 내어 놓을 수 있는 참 사랑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청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바로 나를 죽이는 바로 그곳에 있슴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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