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요한 3,1-8) - 1595

Author
kchung6767
Date
2019-04-28 13:06
Views
1046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1595
2019년 4월 28일 월요일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요한 3,1-8)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당신께서 일으키시는 그러한 표징들을 아무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요한 3, 2)

오늘은 시에나의 성텨 가타리나 동정학자의 기념일입니다.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오늘 가타리나 성녀의 축일에 니코데모와 예수님과의 대화를 묵상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태어나는 것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인가를 니코데모와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우리를 알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에 대해서 알지못했던 니코데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ㅏ

지금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니코데모는 바리사이로서 종교적으로 성숙한 사람이고 유대인의 최고의회의 한 멤버로서 사회적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스승으로 존경 받는 지성인이었고 예수님의 시체를 관리할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갖춘 니코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말합니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당신께서 일으키시는 그러한 표징들을 아무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요한 3, 2)

니코데모의 말을 되새겨 봅니다. 그는 왜 ‘저는’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대신 복수 일인칭 ‘저희’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을까? 그리고 ‘믿는다’는 말 대신에 ‘알고 있다’라는 말을 쓸까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또하나의 질문은 그가 왜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을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성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찾아옵니다. 그런데 이 이성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목격할 수 있는 낮에 예수님을 찾아오기에는 용기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타협점을 찾은 것이 사람들의 눈도 피할 수 있고 자신의 이성적인 욕구도 충족시킬 수 있는 타협점으로 밤을 선택합니다. 나약한 지식인의 이기적인 모습입니다. 그가 궁금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스승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들이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당신은 참으로 하느님으로부터 오신 분이십니까?” 믿음으로 바라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이성으로 바라보니까 질문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러한 질문을 하는 분이 또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이십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새로운 길을 따르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합니다.(사도 9, 2) 그는 이런 사람들을  찾기만 하면 남 녀 불문하고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기 위해서 다마스쿠스로 갑니다. 거의 그곳에 이르렀을 때 하늘에서 빛이 번쩍하며 그의 둘레를 비추고 그는 쓰러집니다. 그 순간 쓰러져서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 때 그가 하는 질문이 바로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하고 묻는 것입니다(사도 9, 2-5) 그 때 예수님께서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 결국 바오로 사도는 하나니아스의 안수를 통하여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됩니다.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니코데모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 3, 3)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것은 바로 "물과 성령으로 태어남”(요한 3, 5)을 말합니다. 물을 말씀으로 대치할 수가 있습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날 때 만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있고 자신의 궁금증도 풀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고 살아가는 우리는 이미 주님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있지만 세상을 살면서 그러한 눈을 흐리게 하는 유혹들에 우리 자신들이 나약해져 합니다. 이러한 나약함이 우리에게  니코데모와 같은 모습을 갖게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은 기도하면서 성령으로 가득차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초대교회의 사도들의 모습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기도하는 삶이 바로 하느님의 모습을 용감하게 전하게 하는 삶임을 깨닫습니다. 이 기도만이 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합니다. 이 기도만이 하느님을 더욱 잘 알게 합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다시 한번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기쁨을 체험하는 하루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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