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동태 복수법의 재이해(루카 17, 1-10) - 2378

Author
신부님
Date
2021-11-06 21:21
Views
1326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378

2021년 11월 8일 월요일

동태 복수법의 재이해(루카 17, 1-10)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지난 날을 되돌아 보면 하루도 쉬운 날이 없었슴을 깨닫게 됩니다.  지나 온 시간이기에 쉽게 느껴질 따름입니다. 살기 위해서 산 날은 참으로 죽음이었지만 죽으면서  산 날은 참으로 산 날이었습니다. ‘생사의 기로에 선 날’과 ‘사생 결단’의 두 말의 묵상을 통해서 깨닫는 의미는 매우 복음적인 의미입니다. 

위령성월을 지내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죽어야 산다는 말이 일상을 살아가는데 참으로 큰 삶의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먼저 주님의 품에 안긴 영혼들을 기억하면서 이들을 통해서 부활신앙을 더욱 굳게 다져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 이것이 나의 삶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것 하고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고 믿는 것하고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엄청나게 다를 것입니다.  영원을 살기 위해서 한계적인 삶을 정리해야 합니다. 그 정리가 바로 관계의 정상화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나의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관계의 정상화를 위해서 당신이 바로 용서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십니다.

오늘복음의 시작은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는 한계적인 존재이기에 죄를 안짓고 살아갈 수는 없을 뿐만 아니라 남을 죄짓게 하는 일이 생길 수 밖에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당연하다고 해서 남에게 죄를 짓게하는 일이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타인을 죄를 짓게 한다면 당나귀가 돌리는 큰 맷돌인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는 것입니다. 남을 죄짓게 하는 것에 대한 심판이 참으로 무서움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탈출기를 보면,  동태복수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많이 인용하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 과 같이 동일한 형태로 복수를 하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복수를 말하면서 복음서에는 용서를 말합니다. 이해하기가 힘들지요. 그 대표적인 부분을 인용을 해 봅니다.

22 사람들이 서로 싸우다 임신한 여자와 부딪쳤을 경우, 그 여자가 유산만 하고 다른 해가 없으면, 가해자는 그 여자의 남편이 요구하는 대로 벌금형을 받아야 한다. 그는 재판관을 통해서 벌금을 치른다. 23 그러나 다른 해가 뒤따르게 되면, 목숨은 목숨으로 갚아야 하고, 24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25 화상은 화상으로,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탈출 21, 22-25)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마태 5, 38-42)

이 두  대조적인 내용을 두고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하고 묵상을 해봅니다. 여태까지는 전혀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읽다가 어느순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두 곳에서 누구에게 말씀하시는가 하는 것이 이해의 키 포인트임을 깨닫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준 사람(가해자)에게 하시는 말씀이고 피해를 받은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즉 피해를 준 사람에게는 그만큼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을 강조하시고 피해를 받은 사람에게는 용서와 사랑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 가면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의 입장을 바꾸는 경우가 많음을 보게 됩니다. 책임을 져야하는 사람과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사람의 입장이 바뀌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단순한 것이지만 이 차이를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접하다 보면, 지금은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완전하고 무한하신 하느님을 불완전하고 유한한 존재인 우리가 어떻게 완전하게 이해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분의 도우심으로 참 의미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모름을 모름으로 인정하고 지금은 넘어가는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그 겸손함이 말씀을 더욱 사랑하게 하는 동기가 될 것입니다.

새로운 하루룰 시작하면서 나로 인해서 나의 이웃이 죄를 짓는 일이 없는 하루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책임을 져야하는 경우에는 합당한 책임을 지고 사랑과 용서를 실천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기쁘게 이를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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