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론

희망의 시작 - 연중 제 31주일 -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채험하는 구원(루카 19,1-10)

Author
신부님
Date
2022-10-28 19:55
Views
708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씀  - 연중 제 31주일

2022년 10월 30일 일요일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채험하는 구원(루카 19,1-10)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루카 19, 9)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기 전에 산에  오르셔서 밤새워 기도하심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알기 위한 기도였을 것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누가 우리를 부르셨는 가에 따라서 정해집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갑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실때 그 부르심의 조건은 세상의 조건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부르신 사람을 당신의 뜻에 합당한 사람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이 채용하는 사람과의 차이 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그 순간 우리는 구원을 체험합니다. 

구원이란 하느님의 아들인 사람에게 하느님의 아들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치유와 구원의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아들의 지위의 회복과 아픈 그 상태에서 그 아픔이 진행되지 않는 것의 차이입니다.

세관장이고 부자인 자캐오의 집에서 예수님께서 머무신다는 것이 구원을 의미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예수님이 자리하시면 바로 그 곳에서 구원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바뀜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변화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서 일어날 그 변화를 앞두고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기대를 합니다. 리더가 바뀜으로 이러한 변화를 기대하고 염려하는데 하물며 우리의 삶의 주인이 바뀐다면 우리에게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겠습니까?  

하느님과 대면하는 사람은 변화합니다. 그냥 변화가 아닌 존재론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혁명적인 변화입니다 그래서 참으로 자신이 변화되기를 원한다면 하느님을 만나야 합니다.

구원은 이렇게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멀리했던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맞아들이는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저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초대한 세관장이고 부자인 자캐오의 당신을 만날려고 하는 저 열정이 나의 신앙의 열정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저의 믿음에 대해서. 너는 선과 악에 경계에 서서 매 순간 순간마다 이쪽으로 저쪽으로 옮겨다니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느냐? 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나의 믿음은  뜨거움과 차가움의 경계에서 차가움에 속하는가 뜨거움에 속하는가?를 돌아보게 하십니다. 미지근한 신앙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을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고 하시는 말씀 앞에서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주님의 말씀에는 언제나 저희들에게 “예” 아니면 “아니오”의 응답의 경계에서 분명한 답을 해야 합니다. 믿음과 순명 그리고 겸손이 함께하는 답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에는 “예”라고 답해야 하는 질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 고 말합니다.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문제의 총체적인 합이  인간의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북 분단은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의 결과의 단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 질문을 해 봅니다. ‘왜 세상이 바뀌어야 할까?” 이 어두운 세상의 문제가 나를 제외한 사람들의 잘못에 결과하는 것처럼 모두들 생각합니다.  세상을 바꾸어야 하면 이들이 기대하는세상은  어떠한 모습의 세상을 말할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는 세상은 지금의 세상의 모든 문제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자기 고백에서 출발합니다. 자신이 죄인 임을 고백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네 탓이 아닌 나의 탓에서 출발하기에 자신을 먼저 바라봅니다. 회개합니다. 이 회개의 모습은 그냥 결과를 탓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죄의 뿌리를 뽑아내는 것입니다. 불가능하기에 절대자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런 면에서 다윗의 회개는 우리가 해야하는 회개의 모습의 좋은 모범이 될 것입니다. 시편 51편에서 그 답을 찾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나라는 하늘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공간의 개념이 아닌 통치의 개념입니다.

예수님께서 부자이고 세관장인 자캐오의 집에 가십니다. 죄인의 대표적인 표상입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하루 밤을 지내시겠답니다. 당시의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이 보기에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인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자캐오는 자신의 집에 예수님을 맞이 하면서  잘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에수님을 찾는 마음에서 이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맞이하는 그 마음 속에 가난한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습니다. 구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찾는 하늘나라의 모습입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요한 묵시 3, 15-16) 는 말씀을 간직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던 그 때의 마음을 잃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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