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론

희망의 시작 - 연중 제 32 주일 - 산 이들의 하느님 (루카 20, 27-38)

Author
신부님
Date
2022-11-04 20:56
Views
743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연중 제 32 주일

2022년 11월 6일 일요일

산 이들의 하느님 (루카 20, 27-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루카 20, 38)

오늘은 연중 제 32 주일이며 평신도 주일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의 역할을 크게 부각하면서, 평신도를 통하여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회는 평신도들에게 주어진 사도직의 사명을 거듭 깨닫게 하려는 뜻으로 이날을 제정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질문하는 존재입니다.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존재인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질문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분별합니다. 이러한 지향을 지닌 질문은 좋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성경의 모든 말씀을 다 이해하고 믿는 것은 아닙니다. 신부인 저도 참으로 성경을 읽으면서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모르는 것은 모르는대로 일단은 믿고서 읽습니다. 한 순간에 모든것을 해결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지금은 조금 시간이 지나간 이야기이지만 우스개 소리로 세 여인의 말을 잘 들으면 세상을 잘 살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세 여인은 바로 어머니와 아내와 내비게이션에서 길을 안내하는 여인입니다.  요즈음의 세태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운전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내비게이션을 사용합니다. 아름다운 여인의 목소리가 길을 안내합니다. 운전자들은 이 여인의 말을 믿으며 따라갑니다.  이 여인의 안내에 토를 달지 않고 믿고 따라갑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가 안된다고 믿지 않는다는 것이 참으로 우습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씀을 읽으면서 어느 순간  이해가 안되던 말씀이 이해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때는 너무나 기쁩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재미인가 보다하고 느낍니다. 말씀 안에서 말씀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을 성숙하게 합니다.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불순한 의도를 갖고서 질문을 합니다. 이들은 모세오경 만을 신봉하고 있었기에 부활이나 천사나 영적인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창세기 38장 8절과 신명기 25장 5절 그리고 룻기 3장-4장에 나오는 율법에 근거하여 일곱형제가 있는데 맏이가 자식이 없이 죽으면 다른 형제가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서 대를 이어야 하는데 그런데 일곱 모두가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으면 그러면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실제로 이 법은 재산 상속에 관한 율법이고 그리고 한 집에 사는 형제에만 적용되는 법이었습니다.

이들은 만일에 부활이 있다면 이 부활은 현세의 연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두가이들이 형제가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으면 다른 형제가 죽은 이의 아내와 결혼해서 형제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이 율법은 부활이 있다면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대를 이으면 될 것이기 때문에 부활이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의 다름을 갖고서 설명하십니다. 

왜곡된 의도의 질문에 순수한 답변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사후의 부활문제에 대한 답변이기도 합니다. 부활 후의 세계는 이승의 연장이 아니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결혼제도는 이 세상의 필요에 의해서 생겨난 제도입니다. 그런데 저승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때문에 종족 보존을 위한 자녀생산의 필요가 없게 됩니다. 이 말은 결혼의 중요한 목적중의 하나가 소멸됨을 말합니다.  즉 결혼의 관계가 부활 후에는 새로운 인격적인 관계로 승화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부활한 사람은 천사들과 같아져서 다시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느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인들이 죽은 뒤에도 하느님을 섬기고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되살려 주셨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눈에는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 앞에서 영원히 살아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다.’ 는 말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으로 부터 생명을 받아서 살고, 죽은 다음에는 새로운 생명을 받아서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설명에 율법학자 몇 사람이 ‘스승님, 잘 말씀하셨습니다.’(루카 20, 39)하고 호응을 합니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박해하던 바리사이들도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두가이들의 그릇된 생각을 바로 잡아주시는 예수님께 호의적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세상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참 성공의 삶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가르쳐주십니다. 또한 당신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은혜와 축복도 허락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본질이 세상적인 야망이나 목적을 달성하고 명성을 누리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하늘나라와 하느님의 뜻을 구해야 하는 것을 강조해 주십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느님과 세상적인 것의 순서가 바뀌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주객이 전도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믿음의 본질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하늘나라와 하느님의 뜻을 먼저 구하면 다른 것들은 곁들여서 받게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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