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시작 -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마태 11, 28-30) - 3398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398
2024년 12월 11일 수요일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마태 11, 28-30)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
미국의 남북 전쟁 때 남군의 지도자는 리 장군이었고, 북군의 지도자는 링컨 대통령이었습니다. 리 장군과 링컨 대통령은 다 훌륭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리 장군보다 링컨 대통령이 더 하느님을 가까이 하고 사랑하였다고들 합니다.
링컨 대통령은 집무 중에 기도를 많이 한 대통령으로 유명합니다. 때때로 그의 사무실 앞에는 ‘기도 중’이라는 팻말이 붙곤 했답니다. 그는 하루에도 몇 시간 씩 하느님께 매달려 기도하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북군에 속한 교회의 목사님들이 대통령을 만나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날마다 하느님이 우리 북군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합니다.’라고 말하였답니다. 그러자 대통령은 ‘하느님이 우리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하지 마시고, 우리가 하느님의 편이 될 수 있기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대답하였답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대답을 통하여 링컨이 얼마나 믿음이 좋았던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대부분은 하느님이 내 편을 들어 달라는 것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느님이 내 편이 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의 편에 서야만 한다는 것을 잊을 때가 많습니다.
혼란한 정국을 바라보면서 많은 분들이 걱정을 하기도 하고 이 혼란을 틈타서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신이 어떠한 조직에 속하는가에 따라서 이 혼란의 시기를 바라보는 시각도 대처하는 시각도 달라질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도 하느님의 뜻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생명을 주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뜻을 묵상합니다.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이 더욱 절실한 시기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느님의 편에 설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가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도 있고 할 때도 있습니다. “저 사람과 너와는 무슨 관계지?” 하는 질문입니다. 물론 남 여 사이의 관계를 물을 때 많이 하게 되는 질문이기도 하지만 갑자기 하느님과 저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무슨 관계라고 대답을 하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과 나와는 무슨 사이지? 바오로 사도의 답을 빌리면 아빠와 아들 사이입니다. 예전에는 종의 관계였다면 지금은 부자 관계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과 저와의 관계를 부자 관계로 정의하고 나니까 마음이 훨씬 편해집니다. 효도는 잘 하고 있는가? 모든 것을 받았슴에도 불구하고 계속 바라고만 살아온 저인데 이제 돌려드려야 하는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 하고 말씀하십니다.
정치 경제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우리에게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큰 위로와 희망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의 키는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지니신 예수님께서 걸어 가신 그 삶의 모범을 우리의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은 우리와 하느님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상처받은 우리 마음을 치유해 줍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성품을 갖도록 우리를 초대하시는 이유는 이러한 마음을 통해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경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또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이 더욱 간절하게 기다려 지는 이 시기에 오늘 예수님께서 주시는 이 말씀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면 이 초대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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