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생명을 보는 눈과 생명 속에서도 죽음을 보는 눈(루카 24, 13-35) - 3173

Author
신부님
Date
2024-04-01 17:10
Views
654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3173

2024년 4월 3일 수요일

생명을 보는 눈과 생명 속에서도 죽음을 보는 눈(루카 24, 13-35)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그러면서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사도 3, 6-7)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루카 24, 25-6)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조건 없는 믿음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죽은자들 가운데서 산 사람을 찾습니다. 분별의 부재입니다. 믿음은 분별하게 합니다. 믿음의 눈은 생명을 보지만 불신의 눈은 생명 속에서도 죽음을 보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우리 교회가 소외받고 가난한 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교회 스스로 가난을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당신 역시 이 가난을 솔선수범하시고 계십니다. 교황님의 이러한 모범이 많은 신자들 뿐만 아니라 비신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슴을 우리는 잘 압니다.

사도행전 3장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들어가는 도중에 모태에서부터 불구자로 태어난 어떤 사람을 만납니다.  그 사람의 자선 요청에 그를 유심히 바라봅니다. 그리고 나서 아래를 보고 있는 사람에게 ‘우리를 보시오.’ 하고 말합니다. 어쩌면 이 사람은 항상 아래만 보고 살아왔을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에 의한 병이 아니지만 자신이 죄인인 것처럼 그렇게 아래만 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당시의 사회적인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당연히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 고개를 들어서 자신들을 보라고 하는 베드로의  말이 가슴에 아려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고개를 숙이고 땅만 바라보는 죄인의 모습으로 살지말고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하느님을 바라보고 살라고 하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뒤의 말을 보면, 실제로 이 사람이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도와 줍니다. 일시적인 도움이 아닌 본질적인 도움을 줍니다. 아마도 그를 유심히 바라보면서 이러한 도움이 필요함을 파악했을 것입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하고 말하면서 그의 오른 손을 잡아 일으켜 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는 것 같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러한 존재양식으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그 성령의 도우심으로 당신의 현존을 이 세상 끝까지 전하라는 당신의 사명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나를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서 알려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의 오른 손을 잡아 일으켜 주는 그 모습이 오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예수님의 성경말씀 설명을 듣고서 가슴이 뜨거워졌던 것처럼 저의 마음을 뜨겁게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십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여전히 눈이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답답한 심정으로 예수님께서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루카 24, 25-6) 하고 말씀하십니다.

“믿는데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하시는 말씀이 여전히 부활을 사건으로 생각하고 이성으로 분석하고 있느냐 하는 말씀처럼 들려옵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이들이 갖고 있는 의문점에 대해서 그리스도가 영광스럽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이 하느님의 섭리임을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왜 고난을 받으셔야 하는 가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십니다. 미사 때의 말씀의 전례와 같이 생각됩니다.

그들과 식사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드시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들에게 떼어서 나누어 주십니다. 바로 이 순간 그들의 눈이 열립니다. 빵을 받아 먹었다는 기록은 없지만 성찬의 전례를 연상시키는 모습입니다. 이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는 순간에 예수님은 사라지십니다. 이 때 비로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성경을 설명해 주실 때 그들의 마음이 타오르는 체험을 한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으면서 이렇게 마음이 뜨거워지는 체험을 하기 위해서 어떠한 자세가 필요할까요? 말씀을 인격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이들의 삶의 모습이 바로 베드로와 요한의 삶의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예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삶입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면서 믿음에 기초한 분별의 삶을, 나의 삶을 통해서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삶을 살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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