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론

희망의 시작 - 부활 성야미사 (마르 16, 1-7)

Author
신부님
Date
2024-03-28 21:56
Views
537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2024년 3월 30일 토요일

부활 성야미사 (마르 16, 1-7)

“놀라지 마라.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보아라, 여기가 그분을 모셨던 곳이다.”(마르 16, 6)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예수님의 부활축일을 맞이하여 하느님의 은총과 평화가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 밤에 부활의 참의미에 대해서 묵상해 봅니다. 부활은 어둠을 빛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한계를 영원으로 불안과 두려움을 평화로 나아가게 합니다.  존재론적인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러한 변화를 톨스토이는 자신의 글 중에서 이렇게 알려줍니다.

어느 사나운 임금님이 사제들에게. ‘하느님을 볼 수 있도록 해 달라.’ 하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사제들은 임금님에게 하느님을 볼 수 있게 해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양치기가 그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임금님께서는 눈이 좋지 않아서, 하느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자 임금은 말했습니다. ‘하느님을 볼 수 없다면, 하느님이 무엇을 하는 지만이라도 알고 싶구나.’ 그러자 양치기는 말했습니다. ‘그 질문에 대답하려면, 임금님과 제가 서로 옷을 바꾸어 입어야만 합니다.’

임금은 서슴지 않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자, 마침내 양치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은 이런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곧 하느님은 이처럼, ‘거룩한 바꿈’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 밤, 우리에게 ‘거룩한 바꿈’을 이루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죽음을 가져가시고, 우리에게 당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이 얼마나 고귀한 교환입니까? 바로 이 거룩한 바꿈이 바로 부활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고 이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바로  부활의 뒷면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뒷면은 어둠과 죽음입니다. 부활한다는 것은 단지 죽었던 생명이 다시 살아나 생명을 연장해 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변화된 생명, 곧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즉 거룩한 바꿈이며 거룩한 변화인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을 의식하며 살아간다면 좀 더 삶을 진지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보면서 참으로 슬프고 고통스러움을 체험합니다. 이러한 아픔과 슬픔이 있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당연히 고통이 따릅니다. 하지만 그 사랑이 고통을 압도하기에 고통이 고통이 아닌 것으로 다가옵니다. 또 사랑 때문에 받게 되는 고통마저도 사랑으로 생각하기에 고통은 사라지고 사랑 만이 남습니다. 그 사랑이 영광으로 드러납니다. 드러나는 영광이고 바쳐지는 영광입니다.

그 영광이 빛으로 다가옵니다. 어둠을 이기고 다가오는 빛은 새로운 모습입니다. 그냥 어둠을 밝히는 빛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빛입니다.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사도 2, 32)에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비참한 인간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셨던 그 분이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내며 다시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능력은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좌절과 절망에 빠져있는 인간에게, 죄와 죽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허둥되는 인간들에게  ‘평안하냐’ 하시며 평화의 인사를 건네십니다.

너무나 인간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던 그분이 십자가 상에서 당신의 인간에 대한 사랑의 미션이 다 이루어졌다고 선언하시면서 아버지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그 분이 아버지에 의해서 다시 살아나시고 이제는 우리에게 평화의 전도사로 오십니다. 더 이상 두려움에서 살지 않도록 초대하십니다.

이 모든 의미를 담고 있는 예수님의 부활을 아우구스티누스 성인께서는  ‘우리의 죽음은 그분의 것이 되었고, 그분의 생명은 우리의 것이 되었다’ 는 말로 정의해 주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간직하고 있던 죽음의 두려움과 고통은 예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죽음의 두려움과 고통은 예수님의 것이 되었고 이제 영워한 삶과 평화는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부활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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