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말씀 묵상

희망의 시작 - 성 마티아 사도 축일 (요한 15, 9-17) - 2536

Author
신부님
Date
2022-05-13 00:58
Views
1067

이른 아침에 읽는 말씀 - 2536

2022년 5월 14일 토요일

성 마티아 사도 축일 (요한 15, 9-17)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요한 15, 9-10)

오늘은 성 마티아 사도 축일입니다.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신부님들과의 만남도 오늘 밤이 마지막 밤입니다.  엘에이의 성 라파엘 성당에서 사제회의에 참가하신 신부님들과 신자분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본당 신자분들의 따뜻한 환대에 감사를 드리면서 좀 더 양들을 사랑하는 참 목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옵니다.

삼위일체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임을 잘 압니다. 그 사랑의 관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관계입니다. 당신의 아들까지도 십자가 상에서 죽게할 수 있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너무나 사랑하기에 목숨을 내어 놓게도 하고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기도 하는 관계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힘든 사랑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을 보면, 그 사랑의 관계가 어떠한 사랑인지를 알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무한한 신뢰의 관계입니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그의 단편에서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산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이 ‘사랑’이라는 말인가 봅니다. 내가 타인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 내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사랑이 많은 사회는 밝고 희망이 있는 사회입니다. 하지만 이 사랑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어떠한 종류의 사랑이 지배하느냐에 따라서 밝음과 어둠의 정도가 달라집니다.  ‘에로스의 사랑과 아가페의 사랑’ 입니다.

에로스의  사랑은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과 사랑하는 목표가 사랑스럽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 하는 대상이 예쁘고 아름답기 때문에, 말 잘 듣기 때문에, 돈이 많기 때문에, 명예와 권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내게 잘해 주기 때문에  등등의 이유로 사랑하는 그 사랑이 에로스적인 사랑의 특성입니다. 즉, 에로스는 무엇무엇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보여 주신 아가페적인 사랑은 사랑해야 할 대상이 아름답지 못해도 가난하고 힘이없어도 우리의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5장8절에 있는 것처럼 “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금의 사회는 이기적인, 즉 에로스의 사랑은 충만해도 희생적이며 무조건적인 아가페의 사랑은 참으로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모든 사회적인 문제의 기저에는 자신만을 이기적으로 사랑하는 에로스적인 사랑이 지배하고 있슴을 잘 압니다. 이러한 시기에 오늘의 말씀은 하느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라는 명령으로 들려옵니다. 이 어두운 시기에 하느님의 아가페의 사랑 만이 밝음을 가져오는 유일한 해법인 것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해 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계명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본절에서는 계명이라는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로 ‘엔톨레’ντολ(엔톨레)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명령하다, 위임하다’ 의 의미를 갖고 있는  ‘엔텔로마이’(entellomai)라는 동사에서 유래합니다. 

ντέλλομαι(엔텔로마이)는 ‘~안에’의 뜻을 가진 전치사 ν(엔)과 ‘끝’ 혹은 ‘마침’의 뜻을 가진 τέλος(텔로스,)의 합성어입니다. 그런데 τέλος(텔로스)는 존재의 의미로서 사용될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나는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시작이며 마침이다”(묵시 22:13)” 여기서 ‘마침’이 바로 τέλος(텔로스)입니다. 따라서 계명이란 의미를 지닌  ντολ(엔톨레)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라는 뜻을 가진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계명이나 내 계명’이라는 말의 의미는 하느님 안에 혹은 예수님 안에라는 의미로 볼 수가 있습니다. 이 말은 하느님과 예수님과의 하나 됨의 관점에서 본다면 좀 더 명확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일치하시기 때문에 아버지의 사랑 안에 머무르시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과 일치함으로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이 일치는 바로 ‘순명’ 이라는 끊을래야 끊을 수없는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이 순명의 고리는 필립피 2장 6절에서 8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당신을 낮추시어 그냥 죽음이 아닌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명하신 분이십니다. 겸손의 단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느님이신 분이 종의 모습으로 사람들과 같이 되십니다. 그리고 둘째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낮추십니다. 세째는 그 죽음이 일반적인 죽음이 아닌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게 하는데까지 낮추게 됩니다. 이러한 낮춤은 바로 아버지께 대한 순명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순명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겸손의 삶이 우리의 삶이 되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삶의 구체적인 방식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계명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3, 34)

코린토 전서 13장을 보면, 사랑에 대한 찬가가 있습니다.  이 장에서 바오로 사도는 사랑에 대해서 말하는데 그 사랑은 원래 그리스어 원문을 보면, 현재형이고 동사로 쓰여져 있습니다. 사랑은 현재 행동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축일을 맞으시는 여러분 모두에게 다시 한번 축하를 드리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새 계명을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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